천재들의 연구실.

제목이 좀 자극적입니다.

저는 정치적인 의도를 가지고 어떤 애기를 하려는게 아닙니다

 

그러나 감성팔이식으로 이용되는 통일에 대해서는 우리가 냉정하게 한 번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일단 한 번 이야기 나눠보시죠.

 

잘못 애기하면 사람들이 원수가 되는 대화 주제가 있습니다.

바로 종교와 사상입니다.

 

이 종교와 사상은 같으면 너무 쉽게 한 마음 한뜻이 될 수 있는 반면

다르면 웬수가 될 수 있는 주제로 사이가 나빠지고 싶은 상대가 있으면 하면 됩니다.

 

왜 그럴까요?

예를들어 기독교는 유일신 사상입니다. 즉 여호와 하나님 한분만 신으로 경외하는 종교입니다

기독교를 믿는 사람에게 여러신을 믿는 다신교나 타 우상을 숭배하는 종교는 배척해야 되는 상대입니다. 따라서, 각 종교를 믿고 있는 사람은 화합이 불가능합니다. 왜냐면 유일신을 버리는 즉시 해당 종교의 근본을 버리는것이되고 반대로 다신교자 역시 본인이 믿고 있던 여러신들을 부정하는 셈이 되기 때문에 이건 합쳐질 수 가 없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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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종교 못지않게 화합이 안되는게 바로 사상입니다.

그리고 이 사상이 남 북한은 너무 다릅니다. 그래서 통일 감성팔이에 우리가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구체적으로 뭐가다르냐구요? 너무나 큰 두가지가 다릅니다.

 

 

 

 

첫 번째 남한은 자본주의, 북한은 공산주의국가입니다.

 

 

사실 이 하나의 차이만으로 둘은 화합이 불가능한 체제입니다.

근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그게 뭐 어때서? 하고 넘어갑니다.

 

우리나라사람들이 똑똑한데 철학에 대해선 어린시절부터 공부할 기회가 잘 없기 때문이죠.

 

둘의 결정적 차이가 무엇일까요?

 

바로 재산의 사유화를 허락하느냐 마느냐입니다.

자본주의에서는 내 재산을 내가 소유하고 조정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자본을 가진자와 갖지 못한자의 격차가 생기게 됩니다.

 

반대로 공산주의에서는 개인의 재산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은 공공. , 국가의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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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분을 가리지않는 인재 채용과 리더의 자리에서 항상 부지런히 연구한 세종 

 

세종대왕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존경받는 위인중 한분입니다

 

세종대왕이 왜 훌륭하냐고 묻는다면 보통 한글을 기억하시죠. 근데 오히려 한글만으로 세종대왕을 성군이라고 부르기엔 저평가라고 할정도로 많은 업적을 남긴분 입니다. 다양한 업적들에 대해선 다음번에 다뤄보도록 하고 오늘은 그 세종대왕마저 실패했던 정책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 훌륭한 세종대왕마저 실패한 정책들이 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화폐유통입니다.

당시에는 획기적인 아이디어였죠.

 

고려시대엔 쌀과 베, 즉 미포가 화폐 역할을 대신했습니다. 조선 초기에도 이어졌지만 태종은 이를 바꾸려고 했죠. 화폐 발행 권한을 국가가 독점해야 경제적 이득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저화라는 화폐를 발행했는데 종이는 쌀같은 실물가치도 없고 위조도 쉽습니다. 당연히 백성들에게 외면받고 이 가치는 폭락했습니다. 그러자 태종은 세금과 벌금을 세배로 인상합니다..

 

그 후 즉위한 세종은 저화의 대안으로 구리화폐를 생각합니다. 실물가치도 있을뿐더러 종이보다 위조가 힘들기 때문이죠. 구리가 들어간 기물을 걷어들이고 광산을 개발합니다. 그리고 이 주화가 발행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주화 역시 외면합니다. 공식적으로 주화 1문은 쌀 한 되 가치로 정해져 있었으나 시장에서는 3문을 줘야 한 되를 살 수 있을 정도로 주화 가치가 하락. 상황에 따라 쌀값은 오르고 내리는데 가격이 고정돼 있으니 주화로 거래할 사람은 없었죠.

 

그 후 세종은 화폐가치를 시세에 따르도록 했으나 주화에 대한 신뢰는 떨어졌습니다. 주화 통용을 강제한 법 때문에 민심은 흉흉했고 상인들이 사용하지 않으면 벌칙이 있었습니다. 근데 이 벌칙이 좀 심해요. 주화를 안 쓰면 경범이라도 곤장 100대에 가산 몰수였습니다.

 

그 뒤로도 화폐개혁은 계속되었는데요.

이 후 내용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관련된 영상을 혹시나 해서 퍼왔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참고하세요 ㅎㅎ

 

 

 

 

 

화폐를 쓴다는건 그야말로 이상적인 제도였지만 백성들의 사정과 시장의 현실을 외면한 결과 성군 세종대왕마저도 실패한 정책이 되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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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마지막 천재 정몽주

 

쇼미더머니가 유행이 된지 한창이 된 시대,

화려한 디스전등과 자신의 생각을 맘껏 표현하는 힙합 정신

 

근데 그 원조 중에 하나가 바로 이분에 곡입니다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죽어

백골이 진토 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고려의 마지막 충신.

포은 정몽주이야기 시작합니다.

 

단심가로 유명한 정몽주는 선비의 이미지가 강하지만

실은 이성계밑에서 왜구토벌에도 공을 세운 문무를 겸비한 인물입니다

 

학문·외교·경제·군사·정치·인품에서 탑 레벨을 찍은 사기 캐였죠.

 

고려말 권문세족에 대항한 신진사대부를 키우고 조선 건국에 핵심인물이된

능력자들을 배출한 이색학원에서 스승조차 정몽주의 말은 이치에 닿지 않는게

없다며 극찬했습니다.

 

그 어렵다는 과거시험을 일찍이 장원급제 했는데

세 번 시합에서 세 번 모두 장원을 받은 천재입니다.

 

초창기 정치때 기득권세력은 정도전을 욕보이기위해 왜에 노략질을 금하라는

전달을 하는 사신으로 보냅니다. 성공 가능성은 낮으나 잘 되면 좋은일이고

실패시 그냥 거기서 죽을수도 있는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직전에 떠낫던 사신들 모두 몇 달째 소식이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죠.

 

그런데 이게 무슨일?

정몽주는 되려 왜의 지도자들을 설득하여 후한대접을 받고 지내다가 심지어는

고려인 포로들까지 데리고 돌아오는 성과를 냅니다.

 

몇 년뒤에는 명나라 황제 생일 축하사절로 가게 되는데

이 일은 사실 진평중이란 위인이 사신으로 선발되었습니다.

명나라 황제 홍무제는 워낙 변덕이 심하고 심술이 있어 목숨을 보장할 수 없는 길이었죠.

때문에 진평중은 뇌물을 바쳐 사신에서 빠지고 미움받던 정몽주가 대신 가게

됩니다. 준비해서 도착하는데만 세달이 걸리는데 남은 시간은 고작 두달.

축하가 한창 끝나고 도착해서 생일 축하한다고 하면 놀리는 것도 아니고

그 홍무제 성격에 무사할 수 없다는 게 기득권세력의 계산이었죠.

 

참고로 홍무제 하면 숙청이라 할 정도로 무서운 인간입니다.

자신을 도와 목숨을 걸고 싸웠던 공신들과 그 일족을 모조리 죽였는데, 숙청이 대상이 된 사람들과 학연 등 인맥이 있는 사람들까지 모조리 잡아 죽였기 때문에 주원장의 숙청으로 죽임을 당한 이들은 9만 또는 10만 명 이상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됩니다.

 

그러나 정몽주는 친구 정도전에 도움을 받아 기일내에 당도했을뿐만 아니라

홍무제를 설득하여 되려 억류되어 있던 전임 사절들까지 데리고 돌아옵니다.

 

이쯤되면 마술을 쓴게 아닐까 정도입니다.

그정도로 외교의 달인이었죠

-

 

제자 양성도 잘해서 세종대왕의 스승인 권우가 정몽주의 제자였고 조선왕조 후반

사림파의 영수 김종직이 정몽주의 제자였던 길재의 맥을 있기도 하였습니다.

 

 

아마 이성계 편에 섰더라면 정도전과 더불어 조선왕조에서 가장 대우받는

핵심인사가 될 수 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유교를 숭상한 조선에서는 비록 반대파였음에도 불구하고 정몽주의 충절을 높이사

후손들은 조선왕조내에서도 혜택을 받았습니다.

 

사육신 사건때 정보라는 사람이 그들을 두둔하자 거열형에 처해졌는데

정보가 끌려나간후 세조가 정보가 어떤사람인지를 묻자 신하들이 정몽주의

장손이라고 대답하자 놀란 세조가 형을 중지한 유명한 사례가 있습니다.

 

이렇게 사후에는 오히려 조선 개국의 일등공신이지만 역적으로 찍혀 푸대접받은

정도전과 달리 정몽주는 처음 무덤은 승려들이 묻어줘야 할 정도였지만 이후에는

왕릉에 준할정도로 우대받고 조선시대 폭군들조차 정몽주에 후손들은 연좌되는 것을

피하게 할정도로 특혜를 입었습니다.

 

당시 정몽주가 고려에 가진 영향력이 엄청났는데요. 조선개국에 가담한 대표적인 인물이었던 조준에게 조견이라는 동생이 있었는데 조선 개국에 대해서 조준이 동생을 설득하려 하자, 조견이 "또 정몽주는 이 나라의 기둥이자 주춧돌인만큼 만약 한 마디 말과 한 가지 일이라도 그와 달리하기를 구한다면 이것은 국사를 해치는 것이고 나라가 망하기를 재촉하는 것입니다.

라고 할정도니 고려의 마지막 정신적 지주였다고 봐도 될정도입니다.

 

이 잘난 사람은 자식농사마저 잘지어서 그의 아들 정종성은 고려말 아홉효자 중 한사람에 들기도 합니다. 정보사건으로 가문이 기울었으나 후에도 자손들이 과거에 급제해 벼슬한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나오기도 했습니다.

 

당대 사람들이 그를 가리켜 왕을 보필할 재주라 하여 왕좌지재라고 칭했고

현재는 경기도 용인시에 수지구를 관통하는 국도명이 이 정몽주의 호를 따서

포은대로로 명명되어 있습니다. 또한 대규모 문화시설인 포은 아트홀과 포은아트갤러리

역시 그의 호를 따서 지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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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에는 무수한 영웅의 이야기가 나오지만
진짜 뭐 하나 가진거 없이 나중에 황제의 자리까지 올라
후계자에게 대업을 전한 인물은 유비 단 한사람뿐입니다.

그 잘난 조조도  결국 황제를 칭하진 못하고 죽었거든요.

가난한 촌뜨기 유비에 대해 여러분에 이미지는 어떤가요?
아시다시피 무력이 뛰어난것도 지력이 뛰어난것도
딱히 어떤 강렬한 이미지 포지션이 없습니다만

그는 이모든걸 상쇄하는 엄청난 강점이 있었으니
바로 사람을 끄는 '매력'입니다.

금수저 귀족출신 원소와 조조도
강동의 호랑이 손견, 무력의 왕 여포 조차도 오르지 못한
황제의 자리를 그야말로 맨손으로 이뤄낸 유비.

물건이 아닌 사람의 마음 그자체를 사버리는 능력.
대표적인 이야기 

 

 



1. 삼고초려

워낙 유명한 사자성어죠.
어떻게든 바닥에서 일어나보려 했지만
좀 살만하면 뒤집어지고 엎어지고 하던 유비

그런 그에게 한 어르신이 조언을 해줍니다.

와룡과 봉추 하나만 얻어도 천하를 얻을 수 있다라고 말이죠.

그러고보니 주변에 관우 장비같은 일당백 용장들을 갖추고도
맨날 얻어맞고 다녀 자존감이 바닥이던
유비는 '그래 나에게 참모가 필요해'하며
와룡 공명을 섭외하기 위해 길을 떠납니다.
-


근데 잠깐 여기서 상황 설명을 하자면
유비에게 참모가 필요한 건 사실이었고
많이 지고 다닌 것도 팩트지만

당시 유비는 황제에게
좌장군 예주목 의성정후라는 벼슬과 작위를 
받았을뿐 아니라 
황실의 종친으로서 이미 그 시점에 천하의 삼분의 이를 차지한 
조조의 맞수로 전 중국에 이름을 떨쳤던 핵인싸, 슈퍼셀럽이었습니다.

게다가 유비와 제갈량의 나이차이는 대략 20살 정도로
자기보다 20살이나 어린 사람을 지역에서 유망주로만 
여겨지던 백면서생 제갈량을 섭외하기위해 세번씩이나 극찬하며
찾아간 것입니다. 

지금으로치면 비록 대기업은 아닐지언정
한때 대기업과 맞붙기도 하고 잘나가던 중소 중견기업 회장님이
대학갓나온 석사정도의 이름좀 있는 인재를 뽑겠다고
직접 3번이나 손수 찾아갔다고 보면 될까요?

물론 우리야 이후 제갈량의 무지막지한 업적을 이미 알고 있기에
유비는 3번이 아닌 30번을 찾아갔어도 모자라다고 할 수 있지만
그때는 제갈량이 우량 가치 성장주인지 이름만 무성한 개잡주
작전주인지 모를때였으니까요.

이때 이 작전주인지 우량주인지 모를 인물을 추천한 또 한사람이
있으니 당시 유비 휘하에서 활약하던 서서라는 인물입니다

아무튼 당시 유비에게 서서는 
 “제갈공명은 와룡입니다. 장군께서는 어찌하여 그를 쓰지 않으십니까?”

라고 묻자 유비는 댁이 데리고 오시오라고 했으나 
 “이 사람은 가서 만나볼 수는 있으나 몸을 굽혀 오게 할 수는 없습니다. 
장군께서 의당 몸을 낮추시고 방문하셔야 합니다.”

라고 조언했다고 정사 삼국지 촉서 제갈량전에 등장 합니다.

삼국지 세트 이문열 삼국지 개정 신판 전 10권, 알에이치코리아


근데 이 서서라는 인물에게서 유비의 인품을  볼 수 있는
에피소드가 나옵니다.

당시 유비에게 서서는 꼭 필요한 인재였는데
어머님이 조조에게 인질로 잡히자
서서는 자식된 도리로 가봐야 한다고 말을 합니다.

이때 유비는 눈물로 마중하며
부모자식의 정을 어찌 자기가 떼어놓을 수 있냐며
서서를 보내줍니다.

연의 삼국지를 보신 똑똑한 구독자분들이라면 이미 알고계시겠지만
서서를 만난 이후로 유비군 전체가 바뀌었다고 할정도로
꼭 필요한 인물이었고 인재였음에도 유비는 홀연히 놔주게 되죠.

아무튼 이 이후 인재를 받아들일 준비로 유비는
사우나에가서 찜질도 좀 받고 피부관리랑 네일아트를 받은뒤에
(물론 진짜 그러진 않았겠죠;;)
어쨋든 몸을 정결하게 하고 두 아우와 함께 제갈량을 방문합니다

그러나 집에는 동자 한명만이 있었고 제갈량은 여행을
떠나 언제돌아올지 모른다는 말뿐이었습니다.

이에 뭔길을 온 장비는 심통이 나서 
'에이 그깟놈 데리러 먼길까지 왔는데 이게 뭐냐'
하면서 성질을 내기도 합니다.

이후 다시 한번 제갈량에 집에 방문하지만
역시나 얼굴을 볼 수 없었고 돌아오는 길에
백성들이 제갈량의 아내 부인을 놀리는 노래를 부르는 걸 듣게
됩니다. 
-



장비가 "아내가 저 모양이니 제갈량도 딴 여자나 만나러 
돌아다니는 모양이다"라고 투덜대지만 유비는
시끄럽다고 일축하고 조용히 돌아갑니다.


참고로 제갈량의 아내 황부인은 당시 기준으로 외모가 좋지
못해서 놀림거리였다고 합니다.
오죽하면  "공명이 부인 고르는 것은 배우지 마라" 라는
속어까지 있었다고 하니 그당시에도 이놈의 외모지상주의는
심했었나 봅니다.

그러나 제갈량은 외모에 상관하지않고 그녀의 재능에 반해 결혼
했으며 제갈량은 이 결혼을 통해 얻은 엄청난 인맥으로
지역에 명사가 되었으니 부인의 덕을 톡톡히 본셈입니다.

제갈량의 집에 갑자기 많은 손님들이 들이 닥쳐도 황부인은 
언제나 초고속으로 식사를 준비했기에 비결이 궁금했던
손님들은  이를 궁금해해서 주방을 들여다봤더니 
목각 자동인형들이 맷돌을 돌리고 절구를 찧고 있었다고 합니다.

현명한게 그 남편의 그 아내입니다.
외모가 전부가 아닌것입니다 여러분
황부인은 천문, 지리, 병법에 능했다고 하니
뒤에서 활약했을 가능성은 충분하죠.

아무튼 그러나 유비의 제갈량얻기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해가 지나 봄에 다시한번 유비는 제갈량을 찾아갔으나
공교롭게도 낮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이에 유비는 깰때까지 와룡선생을 기다립니다
진짜 대단하네요.....

심지어 제갈량이 뒤척이는 걸 동자가 깨우려 하자
눈짓으로 말리기까지 합니다.

어릴땐 잘 몰랐지만 이걸보면 유비가 진짜 인생의 고수입니다.
나중에 일어난 상대는 얼마나 민망하겠어요
어찌 부탁을 거절하겠습니까?

반면 아무리 기다려도 소식이 없자 성질급한 장비는 
밖에서 기다리다 어떻게 되가고 있나 안을 들여다보니
유비가 계속 서서 기다리는 걸 보게 됩니다.

우리형님을 저렇게 대우하다니 눈이 돌아간 장비는
당장 집에 불을 지르겠다고 길길이 날뛰지만
다행히 관우가 만류하는 바람에 넘어갈 수 있었습니다.

안그랬으면 거사를 그르칠뻔했죠 ㅎㅎ

드디어 잠에서 깨어난 제갈량은 인기척을 느끼고
누가 찾아왔냐고 동자에게 묻게됩니다

제갈량은 인기척을 느끼고 동자에게 누가 찾아왔냐고 묻자 
동자는 유비가 한참부터 기다리고 있다며 얼른 대답했고, 
제갈량 역시 얼른 의관을 갖추고 유비를 맞이합니다. 
이후 정식으로 예를 표할 때 한낱 백성인 자신에게 무릎을 꿇는 것을 
보자 감복하고 유비가 의견을 묻자

이 때 그유명한 공명의 대계 천하삼분지계를 설파합니다.
 

한참 설명을 들은 유비가 망설이다가 세 번이나 찾아온 목적인 
"부디 나와 함께 그 대업을 이루자"고 말하자 제갈량은 지금의 
생활에 만족한다며 거절했으나, 유비가 "그러면 저렇게 고통받는 
백성들은 어떻게 하란 말이오"라며  눈물을 흘리자 
마음이 움직여 유비에게 종군하기로 결정합니다.

만화 삼국지 세트, 문학동네




장수로써의 무력도, 책사로써의 전략도 
그에 바탕이 될 배경도 빽도 일도 없던 촌뜨기 유비.

그러나 그는 사람의 마음을 사는 능력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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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디 자서전. 단식 다이어트의 제왕. 아이들이 읽기 좋은 책.


서울대 추천도서로 각색한 만화 고전인데요.

간디하면 우리는 비폭력 무저항의 스님 모습같은 삐적마른 한 남자를 연상합니다.


평범하고 심지어 공부도 잘 못했던 간디는 어찌어찌 가족의 도움으로

영국에가서 변호사에 합격하고 돌아옵니다.


말도 잘 못해서 더듬거리던 간디는 변호도 잘못해 일도 못하고 있다가

우연한 기회로 남아공에 가서 일을 맡게 되죠.


그 과정에서 인도에 독립에 대해 생각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그 뒤부터 비폭력 무저항 주의로 인도를 이끌었구요.

우리나라의 김구선생님과 비슷한점은 독립운동을 이끌었다는 것과

분단 국가를 막으려 힘쓰다가 암살 되셨다는 겁니다


인도는 영국이 통치하기 쉽게 여러 분파로 나눠놓고 그러다 보니 갈등이 생겼는데

가장 큰 갈등은 바로 종교. 이슬람과 힌두교의 다툼입니다.


그래서 현재의 인도와 파키스탄으로 나눠졌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희생자가 생겼죠.


독립과 인도인의 권리를 위해 단식하는 간디

독립을 하고도 단식....

-

그리고 목숨을 건 단식...

단식을 멈추지 않는 간디....

진짜 단식의 제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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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자하자면 간디 다이어트 책같은거 냈으면 대박이었을듯!

계속 단식 ㅠㅠ


간디의 단식은 그 후로 세계 유명인사들의 트렌드가 되었죠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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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과거 전쟁 역사와

생활터전을 반증하는 살아있는 유물들


성!.


세계 최고의 요새들을 둘러본다.

각 나라에 가면 관광하기도 좋은!!

함곡관.

중국 역사책 초한지등에서 많이 등장하는 전쟁 요충지.

고대 중국의 주요 대도시인 장안(함양)과 낙양으로 가는 요충지 중의 요충지에 세워진 관문

낙양성

오랜 중국의 역사동안 수도였던 낙양. 각종 요새들을 헤치고 오면 도착하는 

마지막 보루. 보스몹 급의 성이다.


서안성벽

중국에서 만리장성 다음으로 큰!!

서안은 과거 장안이다. 중국에 가장 화려한 수도 중 하나였던.

산해관

20세기의 일본군조차도 이곳을 못 뚤어 가스를 살포했다는..

바빌론 성벽

당대 최강이던 페르시아 조차도 무너뜨리지 못했던 ㄷㄷ

성경시절에나 등장하는 전설의 요새

하드리아누스 방벽(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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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문화유산

테오도시우스 성벽

콘스탄티노플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보디엄 성(영국)

리니지의 하이덴이 생각나네...

크렘린

러시아의 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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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산층이 많아야 사회가 안정되고 풍요롭다고 한다.

그럼 중산층의 기준은 과연 무엇일까?


우리나라와 다른 선진국들의 중산층의 기준을 살펴보자.




미국의 중산층(공립학교에서 가르치는 중산충의 기준)


- 자신의 주장에 떳떳

- 사회적 약자를 돕는다

- 부정과 불법에 저항

- 비판적 사고


영국의 중산층(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제시한 기준)


- 페어플레이

- 자신의 주장과 신념 보유

- 독선적으로 행동하지 않는다

- 약자를 두둔하고 강자에 대응한다

- 불의, 불평, 불법에 대처


프랑스의 중산층(퐁피두 대통령이 말한 기준)


- 즐기는 스포츠가 있다

- 하나 이상의 외국어

-

- 다룰 줄 아는 악기가 있다

- 다른 사람에게 대접할 남들과 다른 자신만의 요리가 있다

- 약자를 도우며 봉사활동을 한다

- 사회정의가 흔들릴 때 바로잡기 위해 나선다.


대한민국의 중산층(직장인 대상 설문조사)


- 부채없는 아파트 30평 이상을 소유

- 월 급여 500이상

- 중형차 보유

- 예금액 잔고가 1억 이상

- 일년에 1번 이상 해외여행.


우리나라의 중산층 기준만 부를 기준으로 되어있다.


반면에, 프랑스의 중산층 기준.

너무 멋지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진정한 삶의 질 아닐까?


우리나라는 상위 16%-36%까지의 소득자를 중산층으로 여긴다고 한다.

학교에서 등수 매기는 것과 다를게 없다.


우리나라는 다섯가지 기준으로 나눈다.


재벌, 부자, 중산층, 서민, 영세민.


과연 조선시대와 대한민국이 다른 건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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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만대군을 막은 한반도의 영웅. 을지문덕의 살수대첩.


역사상 최고의 전략가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누가 먼저 생각나나요?


많은 사람들이 중국 촉나라의 '제갈공명'을 이야기 하더라구요.

(알게 모르게 우리는 중화사상의 많이 물들어 있습니다)


제갈공명 - 삼고초려 뒤에 적벽대전을 승리로 이끌어

천하 삼분론으로 촉을 차지하고, 위나라를 향해 여러번 출사표를

던진 남자로, 삼국지 연의(소설입니다)에서는 거의 신격화된

전략가입니다.


이 중, 그의 업적을 가장 대표하는 게 그 유명한 '적벽대전'

훨씬 적은 병력으로 조조의 백만대군을 막아냈다는 전설적인 전쟁입니다.


그러나, 알고 계신가요?

한반도 역사에 이보다 더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고 승리를 해낸

'전쟁의 신'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지금은 거의 모든 기록이 멸실되어 잘 남아있지 않지만,

백만이 넘는 대군을 상대로 승리를 이끌어낸 전략가.


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중국 역사상 3번째로 중원을 통일한 수나라.

당시 동북아시아 최대 강국중 하나였던 고구려,


양국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의 힘싸움을 시작하고

무려 4차례나 전쟁을 하는데, 그 규모는 당시 이 지역에

모든 운명을 건 엄청난 싸움이었다.


애기하려고 하는 건 그 중 2번째 전쟁.

역사상 손꼽히는 대규모 병력을 동원한 수나라.


고구려는 수에 협박에도 불구하고 조공을 받치지 않았고,

대내외적으로 권위를 세우려고 한 수 왕조는 엄청난 규모로 전쟁을 일으킨다.


수 양제가 직접 몰고나온 군대는 1,133,800명.(水군 제외) 말 그대로 백만이 넘는 대군.

이에 보급과 행정인원까지 합하면 그인원은 이에 3배가 된다는 말까지 있을정도이다.

-


아무리 동북아시아에 강국인 고구려라 하더라도 이 중국의 '개떼 병력'은

너무도 무시무시한 것이 사실. 전력상으로 보면 헤비급과 플라이급의 싸움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닐정도다.


전 병력을 보려면 높은 산에 올라가야 하고, 이 병력이 이어진 길이만

960리. 약 380km...... 이는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거리에 해당한다..


패배시 국가는 멸망이다. 당시 전쟁에서 지면 몰살과 노예화는 기본이었으니..

이런 무지막지한 인해전술을 상대로 전면전은 자살행위.

만약 5만의 군사를 잃어도 수는 큰 문제가 없지만, 고구려에겐 패전에 결정적 요인이 될수있는 상황이었다.


이에 고구려군은 천혜의 요새 요동성의 집결. 이 성을 함락시키려고 수군은

별짓을 다하지만 시간만 지체. 시간이 흐를수록 대군인 수나라는 불리했다.


수는 별동대 30만을 조직. 최전선에 나와있는 고구려 주력을 오히려 요동성에 묶어 놓고,

비어있을 평양성을 단숨에 들이친다는 전략으로 돌아섰다.

(주목할점은 별동대만 30만.. 참고로 1차 때 쳐들어온 병력이 30만인데

이도 엄청난 대규모다. 학자마다 다르지만 고구려에 전병력보다 많다고도 함.)


별동대는 100일치 군량과 물자를 갖추어 행군했으나, 이게 너무 무거워 도중에

버리게 된다.(전역자분들은 아시죠^^ 행군 더럽게 힘드니까 이해가 되네요.)


이 때 을지문덕이 거짓으로 항복. 수나라 군영에 형편을 살펴본다.

수의 사령관은 그가 오면 사로잡으라는 양제의 명을 받았으나, 문덕은 되려 무사히 귀환.


뒤늦게서야 그를 잡으려 정예기병을 보내거나 회유를 하려했으나 을지문덕은 이에 속지 않는다.

평양성으로 먼저 들어왓던 해군 부대를 먼저 제압한 후인 고구려군은 수의 별동대에게

연전연패하며 계속 후퇴한다. 


계속 승리한 수군은 결국 평양성 근처까지 도착했고, 고구려의 운명은 풍전등화.

그리고 을지문덕은 한편의 서신을 수의 사령관에게 보낸다.




신기한 책략은 천문을 알았고

기묘한 계책은 지리마저 통달했네

싸움에 이겨 공이 이미 높으니

만족함을 알거든 이제 그만 돌아감이 어떤가


죽을때가 되니 별 미친짓을 다한다고 생각한 수군.

그러나, 무서운 것은 이 모든것이 을지문덕의 '큰 그림'이었다는 것.


1. 아무리 많은 대군이 와도 쉬이 뜷을 수 없는 '요동성'. 

도발이나 기만에 넘어가지 않고 굳건하게 성을 지키며 후방에서 보조한다.


수나라군은 요동성을 버릴 수 없다. 이유는 요동성을 넘어 지나가면 고구려군을

앞뒤에서 만나게 되는 형국이 되고, 대군에 보급이 끊기게 되기 때문.

수나라로선 고구려를 정복하려면 어떻게든 요동성을 뜷고 지나가야 한다는 점을 이용.


2. 어쩔 수 없이 요동성을 막아놓고 별동대만 보낸 수군을 상대로 병력을 아끼며 지는 척 후퇴.

사실 을지문덕은 이들이 마음이 급하다는 걸 알고 있었고, 심지어 이들을 계속 움직이게 하여

지치게 만든다.


3. 지친 수군은 굳건한 평양성을 상대로 싸울수가 없었다. 이에 을지문덕이 거짓항복 서신까지

보내자 이를 명분삼아 회군. 후퇴하는 수나라군에 후미를 들이친다.(이미 수군은 군량이고 뭐고없음)



4. 음력 7월경. 수나라군은 살수를 건넌다. 더운 여름에 건너다 보니 마음이 급해진 병사들.

시원한 강에 전선이 점점 퍼지고 느슨해지게 된다. 병력이 반정도 건너자 고구려군이 기습적으로 후군을 공격.

급격하게 무너지는 수군은 별동대 30만 중 겨우 2천 여명만 살아돌아오게 된다.


사람도 살아돌아오기 힘든판에 군수물자니 공성병기는 남아있을 턱이 없다.

분노한 양제는 사령관들 모두 작위를 박탈하고, 쇠사슬에 묶고 본대를 철수.


말이 백만이지 세계 역사상 당시 시대에 유례가 없는 대규모 병력을 물리친 고구려.

이에 쫄지않고 현명한 전략과 판단으로 국난의 위기를 막은 전쟁의 신 '을지문덕'


사실 이 무지막지한 전쟁은 모두가 을지문덕의 손바닥 위에서 놀았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 한반도에도 이런 위대한 위인이 존재했다는 사실.


제갈공명에 적벽대전은 정사에 기록을 보면 조조의 100만대군이 과장일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장강이라는 지리적 이점과 당시 오의 풍부한 물자를 바탕으로 한 연합군의 강점도 살릴 수 있었다.


물론 적벽대전에 업적을 무시할 의도는 전혀 없다. 역시나 위대한 승리이지만,

을지문덕과 고구려의 업적이 절대 이에 비해 크면 컸지, 작지 않다는 사실.


앞으로 역사상 최고의 전략가 중 한명을 떠올리라면 한반도에 이 위대한

전쟁의 신도 꼭 포함시켜야 하지 않을까? 


출처 : 유튜브 채널 - 문무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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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태인의 경제교육. 유대인의 자녀교육법과 가정에 대한 사랑. 연애와 결혼에 대한 생각. 

너무나 배울게 많은 세계최대 부자민족의 교훈들.




다음 내용은 탈무드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너무나 배울게 많고 읽는 것만으로도 인성이 밝아지는 기분이었습니다.

특히, 그중에서 돈과 가정, 사랑과 자녀교육법에 관한 내용만 모아보았습니다.






유대인에게 돈이란?


-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것이 세 가지 있다. 그것은 고민과 불화와 빈 지갑이다. 

그 중에서도 빈 지갑이 상처를 가장 크게 입힌다.


- 육체의 모든 부분은 마음에 의존하고 있고 마음은 돈에 의존하고 있다.


- 돈은 물건을 사는 데에 사용해야지 술을 마시는 데에 사용해서는 안 된다.


- 돈은 악도 아니고 저주도 아니다.


- 돈은 하느님이 보내는 선물을 살 기회를 준다.


- 돈을 빌려준 사람에게 화내는 사람은 없다.


- 부는 요새이고 빈곤은 폐허이다.


유대인들은 베푸는 것을 중요시하고 어려서부터 선행하는 법을 가르칩니다.

빈곤이 절대 좋지 않고, 차라리 부를 잘관리하고 그걸로 베푸는 게 낫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탈무드는 유교처럼 인간의 본성을 막는 교육은 없습니다. 오히려 인간이 본성대로 흘러가게 순리대로 되는것이 맞다고 보는쪽에 더 가깝습니다.





유태인의 가정과 사랑. 좋은 여자 고르는 법. 결혼 잘하는법


- 부부가 진심으로 서로 사랑한다면 칼날만한 침대에서도 함께 잘 수 있지만, 서로 싫어한다면

폭이 16미터나 되는 침대조차도 비좁다.


-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인간은 누구인가? 그것은 선량한 아내를 얻은 사나이이다.


- 남자는 결혼하면 죄가 늘어간다.(이건 왜 그럴까요? 궁금하네요ㅠㅠ)


- 아내를 까닭없이 괴롭히지 말라. 하느님은 네 아내의 눈물방울을 세고 계신다.


- 세상에서 다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 = 젊을 때 결혼하여 함께 살아온 늙은 아내이다.


- 남자의 집은 아내이다.


- 아내를 고를 때에는 겁쟁이가 되어라.


- 여자를 만나보지도 않고서 결혼해서는 안 된다.


- 자식들은 어릴 때에는 엄하게 꾸짖고 자란 후엔 그냥 지켜보아라.


- 자식을 키울 때에는 차별을 두지 말라.


- 자식들은 엄하게 가르쳐야 하지만 두려움을 갖게 해서는 안 된다.


- 자식을 꾸짖을 때에는 한 번만 따끔하게 꾸짖어라.

  오래 꾸짖으면 효과가 없다.


- 자식들은 부모가 말하는 대로 모방한다. 그의 성격은 그의 말씨로 알 수 있다.

(맞는말입니다!! 자녀 앞에선 말조심!!)


- 자녀와 약속을 하거든 반드시 지켜라.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당신은 그 아이에게

  거짓말을 가르치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


- 가정에서 부도덕한 짓을 하는 것은 마치 과일에 벌레가 붙은 것과 같다. 모르는 사이에 좀 먹는다.


- 자녀는 아버지를 존경해야 한다.


- 자녀는 아버지의 자리에 앉아서는 안 된다.


- 자녀는 아버지에게 말대꾸를 해서는 안 된다.


- 자녀는 아버지가 다른 사람과 논쟁하고 있을 때, 다른 사람의 편을 들어서는 안된다.


- 자녀가 아버지를 존경하고 아버지에게 순종하는 것은

  아버지가 그들을 위하여 먹을 것을 구해오고 그들에게 의복을 제공해 주기 때문이다.


- 하느님이 최초로 여자를 만드실 때에 남자의 머리로 만들지 아니한 것은 여자가

  남자를 지배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었다.

 또, 남자의 발로 만들지 않은 것은 남자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갈비뼈로 만드신 것은 여자가 항상 남자의 마음 가까이에 있을 수 있게 하기 위해서이다.


- 선량한 부부가 이혼을 했다. 남편은 곧 재혼했는데 악한 여인을 만나게 되었다. 그는 새 아내와

  똑같이 악한 사나이가 되었다. 아내도 곧 재혼을 했다. 아내 역시 악한 사나이를 만났다.

  그러나 새 남편은 아내와 똑같이 선량한 사람이 되었다.

  여자들이여, 명심하라. 남자는 언제나 여자에 의해 좌우되기 마련이다.



이 것을 읽고, 결혼과 좋은 배우자의 대한 생각에 대한 어느정도 기준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남자는 여자하기 마련이다. 정말 맞는 말 같아요....


좋은 아내를 둔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 

그런 행복한 사람이 되야겠네요 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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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영웅들. 일본 영웅들의 명언. 일본을 바꾼 위인들. 도쿠가와 이에야스. 오다 노부나가. 사카모토 료마



일본의 3대 영웅 중 하나.

오와리의 바보라고 불릴만큼 바보짓을 많이 했으나,

속에는 사실 엄청난 야심을 숨기고 있었다.


그에 예상치 못했던 행동은 항상 적들을 당황하게 했고,

이는 노부나가에게 승리를 가져다 주었다.


울지 않는 새는 목을 쳐라.

오다 노부나가 명언.(일에 관한 명언이 많네요. 인생조언)




"의미없는 일은 하지마라


돈 만을 위하여 일하는 사람은 영혼을 잃기 쉽다


명예를 구하여 일하는 사람은 기쁨을 잃기 쉽다


권세를 탐하여 일하는 사람은 친구를 잃기 쉽다


자기가 사랑하는 일을 하고 일을 위하여 일하라


그러면 나머지 것들은 저절로 따라 올 것이다."





"수동적으로 일하게 되면

능동적으로 일하는 경우보다

책임감이나 향상심이 떨어진다."





"강자앞에서는 발톱을 숨기는게 상책이다."




"일은 찾아서 하는것이다.

자신이 만들어 내는 것이다.

주어진 일만 하는것은 잡병이다."





못생긴 외모지만 계략의 달인이라 노부나가가 아꼇던 신하.

노부나가 이후 천하를 논하며, 우리나라 입장에선 임진왜란에 원흉이기도 하다.

울지 않는 새는 울게 만들어라.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유언시를 남깁니다.




"몸이여, 이슬로 와서 이슬로 가니

오사카의 영화여, 꿈 속의 꿈이로다"





어려운 환경에서 악착같이 올라온 자리지만 결국 그것조차 꿈이라니......

히데요시 뿐만 아니라 세계에 많은 영웅들이 그렇게 많은 걸 차지하고도 결국 죽음을

맞이하면서 허망함을 느끼는 경우가 많죠.




또 다른 3대 영웅 중 하나.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고, 노부나가 밑에 있었으나 결국 일본 전국시대의 승자가된다.

도쿠가와 이에야스. 울지 않는 새는 울때까지 기다려라


일본 최초로 전국을 통일한 인물이며, 인내심의 달인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사람의 일생은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먼 길과 같다. 

그러니 서두르지 마라. 무슨 일이든 마음대로 되는 것이 없음을 알면 오히려 불만 가질 이유도 없다. 

마음에 욕심이 차오를 때는 빈궁했던 시절을 떠올려라. 

인내는 무사장구(無事長久)의 근본이요, 분노는 적이라고 생각해라. 이기는 것만 알고 정녕 지는 것을 모르면 반드시 해가 미친다. 

오로지 자신만을 탓할 것이며 남을 탓하지 마라. 모자라는 것이 넘치는 것보다 낫다. 자기 분수를 알아라. 

풀잎 위의 이슬도 무거우면 떨어지기 마련이다."





근대 일본을 만들었다는 사카모토 료마

손정의 회장도 가장 존경하는 인물 중 하나로 뽑기도 했으며, 그가 없었다면 서구 열강과 맞설 일본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 불리는 남자.



"인생은 흔히 일종의 연극이라고 한다.

그러나

인생이 연극과 다른 점이 하나 있다.

연극의 무대는 타인이 설치해 주는 반면

인생의 무대는

자신이 직접 설치해야만 한다.

그것도

자신의 취향에 맞는 무대를

인내와 끈기를 가지고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결코,

타인이 무대를 만들어 주는 법은 없다."




"인생은 짧다.

일단 뜻을 세웠으면

그 뜻을 달성할 수 있는 수단만을 생각하고 나아가야 하며

어떠한 난관이 닥쳐도 좌절을 해서는 안 된다. 

설사 그 목적이 성취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 목적으로 가는 도중에서 죽어야만 한다.

생(生)과 사(死)는 하늘의 뜻에 달려 있는 것이니

이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일본의 영웅들의 명언.....

굉장히 와닿는게 많은 철학적인 말들이네요...


저에겐 엄청난 인생 조언으로 다가오고

읽을 때마다 다시한번 생각하고 성찰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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