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들의 연구실.

신분을 가리지않는 인재 채용과 리더의 자리에서 항상 부지런히 연구한 세종 

 

세종대왕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존경받는 위인중 한분입니다

 

세종대왕이 왜 훌륭하냐고 묻는다면 보통 한글을 기억하시죠. 근데 오히려 한글만으로 세종대왕을 성군이라고 부르기엔 저평가라고 할정도로 많은 업적을 남긴분 입니다. 다양한 업적들에 대해선 다음번에 다뤄보도록 하고 오늘은 그 세종대왕마저 실패했던 정책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 훌륭한 세종대왕마저 실패한 정책들이 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화폐유통입니다.

당시에는 획기적인 아이디어였죠.

 

고려시대엔 쌀과 베, 즉 미포가 화폐 역할을 대신했습니다. 조선 초기에도 이어졌지만 태종은 이를 바꾸려고 했죠. 화폐 발행 권한을 국가가 독점해야 경제적 이득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저화라는 화폐를 발행했는데 종이는 쌀같은 실물가치도 없고 위조도 쉽습니다. 당연히 백성들에게 외면받고 이 가치는 폭락했습니다. 그러자 태종은 세금과 벌금을 세배로 인상합니다..

 

그 후 즉위한 세종은 저화의 대안으로 구리화폐를 생각합니다. 실물가치도 있을뿐더러 종이보다 위조가 힘들기 때문이죠. 구리가 들어간 기물을 걷어들이고 광산을 개발합니다. 그리고 이 주화가 발행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주화 역시 외면합니다. 공식적으로 주화 1문은 쌀 한 되 가치로 정해져 있었으나 시장에서는 3문을 줘야 한 되를 살 수 있을 정도로 주화 가치가 하락. 상황에 따라 쌀값은 오르고 내리는데 가격이 고정돼 있으니 주화로 거래할 사람은 없었죠.

 

그 후 세종은 화폐가치를 시세에 따르도록 했으나 주화에 대한 신뢰는 떨어졌습니다. 주화 통용을 강제한 법 때문에 민심은 흉흉했고 상인들이 사용하지 않으면 벌칙이 있었습니다. 근데 이 벌칙이 좀 심해요. 주화를 안 쓰면 경범이라도 곤장 100대에 가산 몰수였습니다.

 

그 뒤로도 화폐개혁은 계속되었는데요.

이 후 내용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관련된 영상을 혹시나 해서 퍼왔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참고하세요 ㅎㅎ

 

 

 

 

 

화폐를 쓴다는건 그야말로 이상적인 제도였지만 백성들의 사정과 시장의 현실을 외면한 결과 성군 세종대왕마저도 실패한 정책이 되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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