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들의 연구실.

부자들의 생각. 유니클로 CEO 야나이 다다시. 

작은 가게를 세계적 기업으로 만든 자수성가 사업가. 





유니클로?


유니클로(UNIQLO, 일본어: ユニクロ )는 1974년 일본에서 설립된 캐주얼 의류 업체이다. 1984년 일본 히로시마에 1호점을 열면서 의류 사업을 시작하였으며, 대한민국에서는 롯데쇼핑이 유니클로 일본 본사와 합작으로 에프알엘코리아를 설립하여 대한민국내 유니클로 영업을 하고 있다.






유니클로 경영자 야나이 다다시 명언.


“실패하더라도 회사가 망하지 않으면 됩니다. 실패할 거라면 빨리 경험하는 편이 낫습니다. 빨리 실패하고, 빨리 깨닫고, 빨리 수습하는 것이 성공 비결입니다.”






작은 옷가게를 세계적 기업으로 만든 야나이 다다시의 생각과 생애.


유니클로의 야나이 다다시 "옷은 패션이 아니다"

"옷은 멋스럽게 잘 입어야 한다는 상식을 깨고 싶었다. 옷은 패션이 아니다. 그저 생필품일 뿐이다."


야나이 다다시(65)는 이런 생각으로 1984년 일본 히로시마에 유니클로 1호점을 냈다.







야나이 회장과 유니클로가 성공한 전략.


야나이 회장은 돈이 없는 소비자들이 난방비를 아낄 것으로 판단해 보온용 의류 ‘플리스’를 기획했다. 플리스를 착용했을 때 거부감을 최소화하고자 폴리에틸렌을 부드럽게 만든 원단으로 사용했다. 그의 예상은 적중했고, 플리스는 1998년 200만장, 1999년 850만장, 2000년에 2600만장이 팔리면서 히트상품으로 떠올랐다. 


8년 후 글로벌 금융위기가 세계 금융시장을 산산조각 냈을 때도 유니클로는 또다시 꽁꽁 얼어붙은 소비심리를 파고들었다. ‘제2의 플리스’로 불리는 히트텍을 선보이면서 승부사 기질을 여과 없이 보여줬다. 


소재 개발을 중시한 야나이 회장은 일본 최대 섬유화학 업체로 꼽혔던 도레이를 직접 찾아가 소재 개발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 


1만벌이 넘는 샘플을 만들고 찢기를 반복한 결과 인체에서 발생하는 수증기를 열에너지로 변환해 발열하는 원리를 적용한 초경량 신소재를 공동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히트텍은 전 세계에 1억장이 넘게 팔리면서 베스트셀러 라인으로 급부상했다. 여기에 야나이 회장은 2011년 도레이와 함께 자외선을 90% 차단하는 기능성 라인 ‘UV-CUT’ 콜렉션을 내놓기도 했다. 


국내에서도 대박을 쳤던 히트텍!







중국시장까지 점령.


야나이 회장은 글로벌 기업들도 손발 들고 있는 중국시장에서 또다시 유니클로 신화를 만들 준비를 하고 있다.

유니클로는 지난 2002년 중국 시장에 진출했다. 그때만 해도 중국은 의류시장을 완전히 개방하지 않았다. 이에 유니클로는 중국 천펑그룹과 합작해 ‘쉰샤오 패션유한공사’를 설립했다. 


이후 유니클로는 상하이에 2개의 매장을 오픈했다. 


그러나 이미 저가형 브랜드에 익숙해져 있던 중국 소비자에게 유니클로의 구매 매력도는 높지 않았다. 야나이 회장이 3년 만에 중국시장 철수까지 고민했던 것으로 알려졌으니, 당시 어려웠던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유니클로 자체가 저가형 브랜드로 성장한 회사인데 중국은 워낙 저가 의류가 많다 보니 파고들기가 쉽지 않은 것이었다.


그러나 야나이 회장은 물러나지 않고 중국사업 담당을 교체하는 등 현지화에 오히려 적극적으로 나섰다. 

현지사업 대표의 의견도 적극적으로 수렴했다. 

이에 제품 고급화·다양화, 친절한 일본식 서비스 등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조금씩 인정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대대적인 조직개편과 시장공략 전략을 바꾼 결과 중국시장은 효자 시장으로 떠올랐다.


이에 최근 중국 경제성장이 침체된 상황에서 유니클로는 과거의 기억을 되살려 판매전략을 다양화하고 있다. 

야나이 회장은 중국 사업을 한층 성장시키고자 미국 엔터테인먼트 및 미디어 업체인 월트디즈니와 업무제휴를 확대하기로 했다. 두 업체는 유니클로 매장에서 판매되는 디즈니를 테마로 한 다양한 의류 및 제품을 공동으로 디자인할 방침이다. 

이달 유니클로는 대만과 홍콩을 포함한 중화권 매출을 전년도의 2080억 엔에서 3000억 엔으로 설정했다. 현재 중국에는 약 370개 매장이 있으며, 연간 100개의 매장을 새로 오픈해 최종 3000개로 늘릴 계획이다. 이는 일본의 3배가 넘는 수준이다. 


일본, 한국, 중국 모두 공통점이 있는데, 경제 성장기에는 사람들이 명품 브랜드에만 눈을 쏟고 유니클로엔 관심을 두지 않았다.

하지만 경기 불황이 오자 모두 유니클로를 찾고, 그 때 유니클로가 기회가 되어 성장했다는 것이다!!

유니클로의 성장에는 일본 한국 중국 3국가의 경기침체와 불황시기가 있었다.


참고 : 이투데이 






야나이 다다시의 생애. (비즈니스포스트 참고)


야나이는 일본의 사학명문 와세다대학 정치경제학부를 졸업했다. 

그는 "학업에 큰 뜻이 없어 마작과 록음악에 빠져 방황했다"고 대학생활을 돌아봤다.


그가 의류업을 시작한 것은 지방 변두리에서 양복점을 운영한 아버지 덕분이다. 그는 졸업 후 슈퍼마켓 체인회사에서 1년쯤 주방식기와 남성의류를 팔다가 아버지가 양복점을 물려줘 고향으로 돌아왔다.


"당시 점원이 7명이었는데 그중 6명이 가게에서 나갈 정도로 어려움을 겪었다. 아버지께서 인감을 내주며 가게를 맡으라고 했을 때 무거운 책임감을 느꼈다. 이왕 할 것이라면 제대로, 내 방식대로 잘하자는 생각을 했다." 야나이의 회고다.


야나이는 그 뒤 12년 동안 기성품 양복에서 남성 캐주얼로 취급상품을 넓히면서 아버지의 가게 운영에 집중했다. 동시에 해마다 미국이나 영국으로 나가 베네통과 갭 등의 체인점을 둘러보며 배울 점을 찾았다.


야나이는 35세에 드디어 히로시마에 '유니크 클로딩 웨어하우스'(Unique Clothing Warehouse)를 열었다. 가게 이름을 웨어하우스(창고)라고 지은 이유는 몇가지가 있다.


야나이는 "옷도 매일 먹는 밥처럼 생필품인데 왜 항상 유행을 따라야 할까"라는 생각으로 기본 아이템에 중점을 뒀다. 면바지 셔츠 재킷 스웨터 양말 속옷 등을 색상과 사이즈별로 가지런히 늘어놓았다.


야나이는 또 "옷도 라면이나 식품처럼 싸고 간편하게 사야한다"는 생각으로 고객 접객을 하지 않는 방식을 선택했다. 널찍한 개방형 공간에서 손님이 직접 원하는 물건을 찾아가도록 한 것이다. 가격도 대부분 1천 엔(1만 원) 아래로 정했다.


가격을 유지하려다보니 단가를 맞추기 위해 가장 비용이 많이 드는 유통마진을 없애야 했다. 그래서 제조 생산 판매를 일괄적으로 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이 새로운 콘셉트의 옷 가게는 개장하자마자 큰 인기를 끌었다. 사람들은 정말 라면을 사듯이 면바지와 셔츠를 사 갔다. 손님이 너무 많아 매장 앞에 줄을 서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가게가 인기를 얻자 이름이 너무 길다는 지적이 나왔다. 야나이는 가게 이름을 유니클로(UNIQLO)로 바꾸었다.


야나이는 일본 내에 22개 매장을 개장한 뒤 1998년 패션의 중심지 도쿄 하라주쿠에 입성했다. 이어 2001년 영국에 4개 매장을 개장하며 해외에 발을 디뎠다.


유니클로는 현재 일본 한국 홍콩 프랑스 등 전 세계 16개국에 1467개의 매장을 두고 있다.


포브스가 발표한 야나이의 재산은 8월 현재 18조 원으로 세계에서 60번째 부자다. 일본 내에서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에 이어 두 번째 부자다. 2009년~2010년에 일본 최고부자로 꼽히기도 했다.


야나이는 유니클로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는 ‘패스트리테일링’그룹 회장을 맡고 있다. 그는 65세에 은퇴한다고 말해 왔다. 그러나 지난해 실적보고 기자회견에서 "아쉽지만 회장직을 계속 유지할 수밖에 없게 됐다"고 밝혔다.


일본 산케이 신문은 당시 "해외시장을 본격 공략해야 하는 시점이지만 야나이 회장은 두 아들에게 글로벌 경영능력이 없다는 평가를 내렸다"고 보도했다.


야나이의 장남은 미국 보스턴대학 경영학 석사를 거쳐 골드만삭스에서 일하다 아버지 회사로 들어왔다. 차남도 미쓰비시상사 식품사업부에서 일하다 아버지 회사로 들어왔다. 각각 40살, 36살의 적지 않은 나이다.







* 바쁜 분들을 위한 요약 정리. 유니클로의 경영전략과 특수함.


- 야나이 다다시는 옷도 생필품이라고 생각함. 고객이 와서 싸고 편하게 사가야 한다 생각해서, 고객 접객을 없앴다.

사실 오프라인으로 옷살때 가장 부담스러운게 옆에서 졸졸 쫓아다니는 점원이다. 제발 저리좀 가라!! 알아서 사게.

유니클로는 이런 체제를 없애고, 정말 고객들이 돌아다니면서 맘 편하게 옷을 살수 있게 배려했다.



- 단가를 맞추기 위해 유통마진을 없앴다. 제조 생산 판매를 일괄적으로 기업에서 처리하는 spa시스템을 도입했다.

미국의 GAP으로부터 SPA(for Specialty-store/retailer of Private-label Apparel의 준말)전략을 채택하였다

(SPA는 한 회사가 의류상품을 생산부터 판매까지 독점적으로 총괄하는 방식을 뜻한다.). 



- 경기가 최고조에 이를때는 사람들이 명품만 찾음. 하지만 경기불황이 찾아오자 사람들이 값싸면서 효율적인

유니클로를 찾았고, 그중 대표적으로 성공한게 히트텍. 난방비를 아끼려는 사람들이 편안하면서 따뜻하게 

입을 수 있게 하여 전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의 저서. 참고하시길.

도서 ‘야나이 다다시 유니클로 이야기’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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